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미 존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사실 토미 존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선수들 중 비상식적 내구력을 가진 사례인데, 수술 후 돌아오자마자 관리고 뭐고 살벌하게 많은 이닝을 던졌다. 복귀한 1976년부터 5시즌을 연속으로 200이닝 돌파했다. * 43세가 되던 1986년, 그가 환자로 치료 받았던 치과의사의 아들이 장성해 [[메이저 리그]]에 데뷔 하고 토미 존에게 멀티히트를 날린다. 그 청년의 이름이 [[마크 맥과이어]].[* http://www.baseball-reference.com/play-index/batter_vs_pitcher.cgi?batter=mcgwima01&pitcher=johnto01 ] 경기 후 "꼬맹이한테 맞기 시작하다니, 은퇴할 시기군요"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3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. 맥과이어와의 통산전적은 20타수 6안타 (2홈런). * 다저스의 에이스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[[콩라인]]이기도 하다. 다저스 시절엔 [[1977년 월드 시리즈|1977년]], [[1978년 월드 시리즈|1978년]] 연속으로 양키스에게 우승을 헌납. 이에 이듬해 양키스로 소속을 바꾸나 [[1981년 월드 시리즈]]에서 양키스가 자신의 2차전 선발승을 포함해서 먼저 2승을 따낸 뒤 [[리버스 스윕|4연패]]로 준우승에 그치는 대참사를 직접 경험해야 했다. 당시 월드 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양키스와의 시리즈 상대전적이 무려 5연패 포함 10전 8패였으니, 정말 지독하게 불운한 위치선정이였던 것이다. 에인절스로 이적한 이듬해에는 ALCS에서도 에인절스가 2연승 뒤 3연패로 WS 진출에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. 더 억울한 것은 [[김시진|자신이 못 던졌으면]] 그러려니 하는데, 존의 PS 통산 성적은 6승 3패, ERA 2.65로 매우 좋았으나, 동료들의 난조로 인해 콩라인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. * 과거 [[코로나 19]] 양성반응을 보였다.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거동이 매우 불편했으며, 그의 자택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치료 받았다. [[분류:미국의 야구 선수]][[분류:1943년 출생]][[분류:1963년 데뷔]][[분류:1989년 은퇴]][[분류:테레호테 출신 인물]][[분류:좌완 투수]][[분류:좌투우타]][[분류:클리블랜드 가디언스/은퇴, 이적]][[분류:시카고 화이트삭스/은퇴, 이적]][[분류:로스앤젤레스 다저스/은퇴, 이적]][[분류:뉴욕 양키스/은퇴, 이적]][[분류: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/은퇴, 이적]][[분류:오클랜드 애슬레틱스/은퇴, 이적]][[분류:웨일스계 미국인]][[분류:잉글랜드계 미국인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